

아래의 글은 환경사이트 메가람에 실렸던 한겨레신문 조홍섭 기자의 컬럼이다.
원제는 "송어, 산천어, 열목어 그리고 생태계...'지금, 양양 남대천에는
산천어의 사랑 빛깔로 물들고 있다'"이다.(편집자 주)

해마다 이맘때즘 동해로 흐르는 양양 남대천에는 진귀한 일이 벌어진다.
바다에서 진객이 상류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길이가 60㎝나 되는 커다란 물고기가 옆구리를 분홍색 무늬로 치장한 채 얕은 여울로 차고 오른다.
주둥이가 새 부리처럼 어색할 정도로 웃자란 머리는 검은 빛으로 물들었고, 훨씬 작은 20㎝ 크기의 배우자들이
수십마리 떼지어 주변을 헤엄친다.
흔해빠진 연어 얘기가 아니다. 송어와 산천어가 만나는 장관이다.

송어 하면 흔히 횟집 수족관에 들어있는 미국산 무지개송어를 떠올린다. 이들은 강원도 깊은 골짜기에 만들어진
양식장에서 탈출해 자연생태계에 상당수 퍼져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토종 송어가 있다.
이 종은 전세계에서 한반도 동해안과 일본, 러시아 등 북태평양 아시아쪽에서만 산다.
태풍 등 큰 비가 오면 송어는 불어난 물을 타고 강의 최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와 여울 사이 바닥에 자갈이
깔린 곳에서 하나씩 떨어진 알을 낳는다.
흥미로운 점은 송어에 두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바다에서 온 송어와 바다에 가지 않고 하천에서만 머무는 송어, 즉 산천어가 있다.
물론 두 종류의 송어는 서로 교배하기 때문에 같은 종이다.
그러나 형태와 생태는 전혀 다르다.
송어는 몸집이 크고 연어와 비슷하게 생겼다.
산천어는 송어보다 몸집이 3분의 1에 지나지 않으며 다 자라도 몸의 무늬나 형태가 어린 송어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산천어는 대부분이 수컷이고 암컷은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송어가 바다에서 올라올 때 산천어 수컷이 송어 암컷과 짝을 짓는 일이 흔하다.
산천어 수컷은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신부가 바다에서 돌아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왜 송어의 일부가 바다로 가지 않고 하천에 남는지, 왜 산천어는 대부분 수컷인지(일본에서는 수컷이
약간 많은 정도)는 수수께끼다. 그 만큼 송어는 신비로운 물고기이다.
송어는 연어과의 물고기이지만 연어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
연어는 온 힘을 모아 산란과 방정이 마치고나서 삶을 마치지만 산천어는 산란 뒤에도 살아남는 것들이 많다.
또 연어는 대부분의 삶을 바다에서 영위하고 최후를 태어난 하천에서 장식하지만,
송어는 산천어가 아니라도 수명의 3분의 2는 강 언저리에서 보낸다.
이른 봄 알에서 깬 송어 치어는 1년 동안을 강에서 산다.
몸집이 웬만큼 커진 뒤 4-6월 무리를 지어 바다로 갈 준비를 한다. 이때 몸색깔은 은빛으로 바뀐다.
여름동안 오호츠크해에서 지낸 뒤 가을에는 태어난 하천 주변 연안에 접근한다.
여기서 담수에 적응해 산란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송어를 '강 연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송어는 열목어와 함께 남한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연어과의 냉수성 어종이다.
서해쪽으로 흐르는 한강의 최상류 맑은 물의 왕자가 열목어라면 동해로 흐르는 강에서 그 자리는 산천어 차지다.
송어와 열목어는 빙하기 생물의 유산이다.
빙하기가 한창이던 약 500만년전의 한반도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반도와 일본은 육지로 붙어있었고 동해는 커다란 호수였다.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빙하로 쌓이면서 해수위는 낮아졌다. 바다는 필리핀 근처까지 물러났다.
마지막 빙하기이던 1만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은 육지로 붙어있었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생태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우선 추운 곳에 살던 종들이 북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못한 종은 멸종했다.
미처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한 종은 기후가 비슷한 고산지대로 대피했을 것이다.
한라산과 지리산 반야봉 일대에만 살아남은 구상나무숲은 이런 무리이다.
하천 생태계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중국 황하와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로 흐르던 강, 그리고 일본 서남부의 강들은 고황하라는 거대한 강의
지류들이었다.
붕어와 잉어, 피라미같은 물고기가 아직도 이들 지역에 꼭같이 서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다가 지류를 갈라놓자 민물고기들은 고립돼 진화를 계속했다.
지역마다 특산종들이 생겨났다.
태백산맥을 건너 영동지방을 흐르던 강들은 고아무르강의 지류였다.
동해로 흐르는 북한의 강과 시베리아 원동지역 그리고 동해로 흐르는 일본 서부의 강들에는 비슷한
물고기가 많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한반도 남쪽까지 분포하던 냉수성 어종들의 서식지도 좁혀졌다.
깊은 산속의 차가운 물이 있는 곳에서 빙하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진귀한 물고기가 바로
산천어와 열목어이다.
이들 빙하 물고기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천연기념물이다 특정야생동식물이다 해서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지만, 서식지 파괴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산천어나 열목어가 살아남으려면 한여름에도 수온이 20도가 넘지 않고 산소가 풍부한 계류가 있어야 한다.
맨발로 들어가면 1분도 되지 않아 발이 저릿저릿할 만큼 물이 차야 한다.
여기에 먹이가 될 수서곤충과 작은 물고기가 풍부해야 하고, 한겨울을 날 깊은 소가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깊은 골짜기까지 양수댐, 산림휴양림 따위의 시설을 짓고 고랭지 채소밭을 만들면서 숲이 사라지고 있다.
숲이 사라지면 직사광선을 받아 수온이 올라가고 물이 혼탁해져 열목어와 산천어에게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아직도 잠수를 해 이들을 작살로 잡는 관광객과 주민이 적지 않다.
여기에 최근 새로운 위협이 추가됐다. 산천어를 인공증식해 엉뚱한 곳에다 풀어놓는 것이다.
속초시가 지난 4월 산천어 2만마리를 인공부화시켜 설악산 국립공원 안 천불동 계곡에 풀어놓은 것은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그 골짜기에는 산천어가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인공부화한 산천어가 날로 늘어나는 반면 자연 송어는 날로 줄어들어 송어 유전자의
퇴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먼 미래의 걱정으로 들린다.
그런데 충북도와 경북도는 엉뚱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충북도가 지난해 수만마리의 산천어 치어를
풀어놓은 곳은 남한강 상류이다.
또 경북도가 올들어 산천어 3만7천마리를 방류한 곳은 낙동강 상류이다.
두곳 모두 애초 산천어는 살지 않던 곳이며 열목어의 서식지이다.
특히 낙동강 상류는 열목어 서식의 남한계지로서 큰 학술적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열목어와 경쟁적인 지위에 있는 산천어를 풀어놓는다면 생태계 교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바다로부터 돌아오는 송어의 야생 유전자는 이들 산천어에게 전혀 공급되지 못할 것이다.
종 자체의 퇴화가 걱정된다.
언론인의 무지도 한심하다.
남한강 상류의 수하계곡을 소개하는 신문기사에는 "산천어와 열목어가 지천"이라고 써있고,
동해로 흐르는 미천골 기사에서는 "산천어와 열목어가 마음껏 노닌다."
그러니 남한강의 오대천 한 지류에 산천어를 옮겨놓고 보란 듯이 '산천어 보호구역'이라고 써붙인
주민을 탓할 수 있겠는가.
블루길과 배스만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조홍섭 <한겨레> 생활과학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