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의 빙하기는 지금으로부터 1만 1천 년전에 끝났다고 알려져 있다.
빙하기에는 바닷물이 증발했다가 육지에 눈의 형태로 쌓여 육지빙하가 두꺼워질뿐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드는 수량이
줄어들면서 해수면이 낮아지게 되는 해퇴(海退)현상이 일어난다.
그 당시 빙하기가 끝나기 전에는 우리나라 주변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최소 120m 정도 낮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해퇴현상때문에 빙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지도 전체가 지금과는 아주 다른 형태를 띠게 되고, 강줄기 역시 지금과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는 대부분 지질시대의 고황하(古黃河)와 고아무르강(古Amur江)으로부터
유래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모두 옛 빙하기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아무르강은 러시아어이며, 아무르강을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흑룡강, 중국에서는 헤이룽강 黑龍江, 몽골에서는 하라무렌이라 부른다.)
보통 플라이오세(Pliocene Epoch)라 부르는 신생대 제 3기 선신세(鮮新世,약 1200만년~200만년전)에는 우리나라 주변 해역에서
해수면이 평균적으로 지금보다 150~180m 정도 낮았던 탓에
황해 전체가 육지였다(현재의 황해 평균수심은 44m에 불과하며, 가장 깊은 곳이 80m 정도이다).
그 당시에는 현재의 대한해협과 대마도 부근이 일본과 육지로 연결되면서,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서남해로
흐르는 하천과 일본 서남부의 하천이
모두 고황하(古黃河)로 흘러들었고, 우리나라에서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들은 대부분 고아무르강의 지류로 이어졌다.
그후 신생대 제 4기 홍적세(洪積世,Pleistocene Epoch,약 160만년~1만년 전)의 간빙기(間氷期, interglacial epoch)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지금의 황해가 만들어져 황하와 한강 등 현재와 같은 수계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고황하 본류의 동북쪽수계에 서식하던)
물고기는 이 때부터
황해를 사이에 두고 황하와 격리된 채로 우리나라의 서남해로 흐르는 하천에 서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에 서식하는 어종과 중국의 황하에 서식하는 어종 사이의 공통점은
이러한 빙하기의 산물이다.
빙하기동안 호수였던 동해는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유입되어 현재의 동해바다로 변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고아무르강수계의 물고기는 우리나라 영동지역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에 서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동지역 하천에 서식하는 물고기의 경우에는 이러한 빙하기와 간빙기 외에도 백두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압록강의
유로가 변경된 데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면서 고아무르강으로 흘러들던 압록강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산이 솟아오르자 동쪽에서 서쪽으로
유로가 바뀌어
황해로 흘러드는 대규모의 유로변경현상이 생겨났는데 이 과정에서 옛아무르강수계의 물고기가 황하수계로 대거
유입되었다.
압록강의 유로변경현상은 구체적으로 장진강과 허천강이 백두산의 융기로 인해 유로가 바뀌면서 지금과 같이 황해로
유입되는 형태로 바뀐 현상을 가리킨다.
남한지역에 서식하는 연어과 물고기는 영서지역의 열목어와 영동지역의 산천어,곤들매기뿐인데 반해 북한지역에는 이 3종
이외에도
사루기,자치 등 다른 어종이 더 많은 것은 압록강의 본류였던 장진강,허천강이 두만강과 함께
고아무르강수계에 속해있던 옛 지질시대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생대 제 4기 홍적세를 거치는 동안에는 4번의 빙기와 3번의 간빙기가 있었는데, 간빙기때 해수면이 상승하자
고황하로부터 분리된 우리나라 여러 수계에서는 지리적 격리가
이루어져 이중 일부의 물고기가 고립된 채로 진화하면서 종분화가 일어나 약 50여종의 우리나라 고유종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하천쟁탈(河川爭奪,river piracy)현상에 의해 영동과 영서지역간에 어류가 이동하면서 각 수계의
물고기가 일부 섞이기도 하였다.
남한쪽에서 하천쟁탈의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태백산 일대를 꼽을 수 있다. 과거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
낙동강 상류인 황지천과 철암천, 동해로 유입되는 오십천(대이리계곡 하류)과
가곡천(덕풍계곡 하류)을 중심으로 하천쟁탈현상이 활발했고 현재도 진행중에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열목어 서식지 두 군데는 모두 태백산을 사이에 두고 남북에 위치해 있는데
이 점은 이 일대의 활발한 하천쟁탈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열목어 서식지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천연기념물 73호인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정암사 일대와
천연기념물 74호로 지정된 경북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의 백천계곡 일대이다.
(열목어 서식지 두 군데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는 열목어 종 자체가 희귀하거나 독특한 학술적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이곳이 전세계적으로 열목어의 최남단 서식지라는 이유때문이다.)
정암사계곡(남한강의 동남천 최상류)과 백천계곡(낙동강 현동천 최상류)은 서로 수계가 다르고 또 정암사계곡보다
백천계곡이 더 남쪽에 있지만
과거 지질시대에는 하천쟁탈현상에 의해 이 두 수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20세기 들어 뚜렷하게 나타난 지구온난화현상때문에 수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한강수계만 놓고 보더라도
열목어의 서식지는 계속 상류쪽으로 좁혀지고 있다.
열목어의 서식지가 계속 줄어드는 것은 (화석연료 사용이 초래한)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상승보다는
인간의 직접적인 주변환경훼손과 남획에 더 큰 원인이 있지만
지금같은 지구온난화의 추세를 감안하면 아무리 철저한 보호를 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남한지역에서
열목어가 자취를 감추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생명체는 주변의 다른 생명체뿐 아니라 주위의 환경과도 끊임없이 상호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간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관계의 그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복잡하고 정교한 상호관계는 아직까지 인간이 알아낸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
확실한 것 한가지는 자연을 옛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그게 어렵다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하는 게 차선의 방법이라는 점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확연한 변화의 결과는 최소 수만년단위로 나타나므로 인간이 그 변화를 포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고기 한마리가 어떤 계곡에 자리잡고 사는 것은 (인간에게는 거의 무한한 시간이라고 느껴질만큼)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이루어진 결과이다.
북천의 산천어, 내린천의 열목어 한마리 한마리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지질시대를 겪으며 태어난 존재이다.
두만강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관북지역 수계에는 백두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하천쟁탈전의 영향으로 열목어와
산천어가 동일수계에 공존하지만
남한에 한정해서 본다면 열목어는 영서지역에, 산천어와 곤들매기는 영동지역에
서로 격리된 채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이중 곤들매기는 남한지역에서 절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긴 세월동안 자연이 이루어놓은 결과를 최근 들어 인간은 이런저런 의도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영서지역의 계곡에서 산천어를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영동수계의 초당계곡과 덕풍계곡에도 열목어가 출현했다.
지난 수백만년동안 지질시대를 거치며 자연이 만들어놓은 질서를 도외시한 상태에서 어종과 서식지 사이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많은 방류사례는
그 목적과는 관계 없이 앞으로 아주 긴 세월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심각한 생태계 교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영서지역에 산천어를, 영동지역에 열목어를 방류하는 행위는 그 의도의 순수성과는 달리 밧데리나
독극물,투망,작살,삼중자망(일명 촉고) 등으로 물고기를 남획하는 것 못지 않게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며
자연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훼손하는 일이다.
.....다음에는 어종과 서식지 사이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방류사업이 초래하는 생태계 교란의
문제점과
뒤늦게나마 그 심각성을 인식한 사람들이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취하는 극단적인 방법에 관한
외국의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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