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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와 산천어

'송어'란 말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한때 '숭어'로 잘못 알려진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가 귀에 익고, 어딜 가나 송어횟집이 널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송어는 미국산 무지개송어일 뿐이다.

멋들어진 토종 송어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 정조 때 농정가인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동해안에 사는 물고기 가운데 맛이 매우 좋은 최고급 생선"이라고 송어를 추켜세웠다. "소나무 마디처럼 붉은 색이 선명해 송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도 나온다.

토종 송어가 귀에 설더라도 '산천어'란 물고기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산천어는 영동지방의 차고 깨끗한 깊은 골짜기에 사는 큰 물고기로서 낚시꾼에게 인기가 높다. '영동판 열목어'라 보면 된다. 열목어처럼 연어과이며, 빙하시대의 유산인 냉수성 어종이다.

송어와 산천어는 같은 종이다. 단지 송어는 바다에서, 산천어는 하천에서 산다. 해마다 단풍잎이 붉게 물드는 10월이면 북태평양에서 산란을 위해 수천km를 헤엄쳐온 암컷 송어를 혼인색으로 치장한 수컷 산천어가 맞는다. 길이가 60cm에 옆구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송어와 길이 20cm의 산천어들이 무리지어 하천 최상류 자갈이 깔린 여울에서 몸을 뒤틀며 사랑의 향연을 벌인다.

이들은 왜 바다와 하천에 나뉘어 사는 걸까. 연어와 달리 송어 새끼는 곧바로 바다로 가지 않고 1년 동안 민물생활을 한다. 몸길이가 20cm쯤 되면 치어는 놀라운 변신을 한다. 민물고기와 바닷고기로 나뉘는 것이다.
옆구리에 검은 반점 무늬가 뚜렷한 어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산천어는 강에 남고, 몸이 은백색으로 바뀐 송어는 오호츠크해로 떠난다. 이 송어는 '시마연어'라고도 불린다. 어류학자들은 호르몬 분비가 이런 변신 여부를 결정한다고 짐작할 뿐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이듬해 5월 바다에서 크게 자란 송어는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와 가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성숙을 기다린다. 수수께끼는 또 있다. 바다로 간 송어의 약 70%는 암컷이고 하천에 남은 산천어의 대부분은 수컷이라는 사실이다. 동해 하천의 산천어는 먼 바다로 떠나보낸 애인을 그리는 총각이라고 보면 된다. 크기와 모양이 전혀 다르고 민물고기와 바닷고기의 차이가 있는데도 산천어와 송어는 서로 사랑을 나눈다.

송어의 비밀이야 어찌됐건, 요즘 산천어 양식이 붐을 이룬다. 서양 송어보다 담백하고 쫄깃한 육질 때문에 비싼 횟감으로 팔리기 때문이다. 미식가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생태계에는 새로운 위험으로 다가온다.
산천어는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인 남대천, 연곡천, 명파천 등에 서식한다. 그런데 최근 경북도와 충북도에서는 남한강과 낙동강 상류에 인공증식한 산천어 수만마리를 방류하고 있다.
또 일반인에게도 분양해, 애초 열목어가 살던 하천에 산천어를 풀어놓고 있다. 태백산맥을 경계로 수백만년 동안 독립적으로 진행돼온 영동과 영서의 어류진화가 교란되지는 않을까. 고유한 유전자원이 사라질지 걱정이다.

대량 인공증식도 문제다. 이미 미국에서는 인공증식된 송어와 연어가 야생종을 압도해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전염병에 취약해지는 문제점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바다에서 소상하는 송어는 '신선한' 유전자의 공급원이다. 그런데 한강과 낙동강에 풀어놓은 산천어는 송어와 만날 길이 없다. 동해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천오염과 개발로 산천어와 송어의 서식지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늦가을 양양 남대천을 거슬러오르는 연어가 1만~2만마리라면 송어는 3~4마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송어는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유구가 알았다면 통곡할 일이다.

조홍섭 한겨레 생활과학부장 한겨레신문 199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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