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생명의 다양성](에드워드 윌슨 지음,황현숙 옮김,까치글방 1995,원제: The Diversity of Life)의
256~260쪽에 실린 내용을 옮겨온 것이다.(편집자 주)


어떤 종의 개체군이 감소하여 소수 개체만이 남게 되면, 그 종은 유전학자들이 말하는 '근친교배 억압'을 통하여 결국 멸종에
이르게 된다.
오누이 새 한 쌍만 남은 억세게 운 나쁜 어떤 휘파람새 종과 같은 극단적인 개체군의 경우를 상상해보자.
그들은 둘 다 열성 치사유전자의 이형접합체이다. 이 말은 곧 두 새가 그들의 두 개의 염색체 중 하나에 치사유전자를,
상동염색체의 같은 위치에는 정상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상유전자는 치사유전자에 우성이고 그 새들은 대체로 건강한 채로 있다.
만일 그들이 치사유전자의 동형 접합체였더라면, 즉 치사유전자를 하나가 아닌 두 개 가졌다면 그들은 죽었을 것이다.
이제 오누이 새가 짝을 짓는다고 해보자. 주어진 정자가 치사유전자 하나를 지닐 가능성은 2분의 1이며, 주어진 난자가
치사유전자 하나를 지닐 가능성도 2분의 1이다.
각각의 결과는 동전의 앞면 혹은 뒷면이 나올 확률과 같다.
어느 자손이 두 개의 치사유전자를 물려받아 죽게 될 가능성은 동전을 두 번 던져 두 번 다 뒷면이 나올 확률과 같다.
1/2(나쁜 정자) x 1/2(나쁜 난자)은 1/4(사망)이다. 이 개체군은 너무나 작아 생식 잠재력의 4분의 1을 포기하는 셈이다.
가까운 친족이 아닌 다른 개체들과 무작위로 짝을 짓는 것과는 대립되는 근친(동계)교배가 왜 수명과 생식의 억압을
야기하는가?
동기,사촌 그리고 양친과 그들의 자손들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그들이 보유하는 열성 치사유전자도 같기 십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형적인 생물인 사람과 초파리는 하나에서 수 개의 열성 치사유전자를 보유한다.
그러나 개체군 전체로 보아서 그러한 유전자들 각각은 단지 100이나 1,000개체당 하나꼴로 나타난다. 서로 관계 없는
두 개체가 동일한 결함 유전자를 지닐 확률은 극히 적다.
설령 둘 다 염색체상의 어딘가에 한 종류의 결함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사람에게서 동일한 유전자가
결합할 가능성은 매우 작아서 테이색스 병이나 낭포성 섬유증과 같은 치명적인 유전성 질환은 다행히도 드물다.
그러나 부모가 가까운 친척관계라면, 그리고 만일 그 개체군이 작고 폐쇄되어 있다면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게
증가한다.
이것이 근친교배 억압의 기본개념이다. 그러나 실제의 개체군들은 이것을 독특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해로운
유전자들의 단지 일부만이 치사유전자이다.
대부분이 "치사에 가깝거나" "덜 치명적"인 것들로 다양한 수준에서 성장을 방해하고 몸을 쇠약하게 하고 번식력을
감퇴시킨다.
이들 유전자들은 동물원에 갇힌 치타와 가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불임을 유발하며, 지나치게 순종교배된 스페니얼 개에게
선천성 심장병을 일으킨다.
보호생물학자들은 한 종이 유전적 억압으로 인해서 이 멸종의 위험이 높아지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그들은 유전적으로 건강한
개체군의 크기를 어림잡아 50~500 법칙으로 이야기한다.
유효한 개체군의 크기가 50 이하로 떨어지고 결함 유전자가 존재한다면, 근친교배 억압이 개체군의 성장을 늦출 정도로
보편화된다.
가축 사육자들은 유효 크기가 50 이상일 경우 개체군내에서 일어나는 근친교배 억압에 대해서 별반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수가 50 이하로 내려가면 그들은 심각하게 고려한다.
유효 개체군의 크기가 500 이하이면 유전자 부동(유전자 비율의 변동 가능성)은 일부 유전자를 제거하여 전체적인 개체군의
변이성을 감소시킬만큼 강하다.
반면에 돌연변이의 빈도는 이러한 손실을 다시 채워줄 정도로 높지 않다.
따라서 종은 점차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근친교배 억압은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더 옭죄여 종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많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 줄어든 유전자 저장고도
그렇게 작용한다.
이것을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면 50 이상의 개체군은 단지 짧은 기간에만 충분할 뿐으로 먼 장래까지 종을 건강하게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500의 개체군이 필요하다.

나는 유전적 퇴보를 이해하기 위해서 "유효 개체군의 크기(effective population siz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보호생물학 이론에서 아주 중요한 척도이다.
스코틀랜드 메이 섬에 서식하는 참새들 같은 실제의 개체군을 생각해보자. 이들이 모두 수컷으로만 이루어졌다면
그 유효 크기는 0이 된다.
아니면 늙어빠져서 번식력이 없는 1,000마리와 임의로 짝을 짓는 건강한 암컷과 수컷 각각 다섯 마리로 구성된 개체군일
수도 있으며, 이 경우 유효크기는 10이 된다.
개체군의 유효크기란 각 개체들이 임의교배가 가능하고 실제의 개체군과 같은 유전자 부동량을 지니는 이상적인 개체군을
가리킨다.
앞의 두번째의 경우에는 모두 1,010마리의 참새가 있지만 번식기가 지난 1,000마리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
이들 1,010마리의 모든 참새들은 유전적으로 볼 때 스스로 번식하는 10마리의 참새와 동일하다. 늙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해서 불임이 증가하면 유효크기는 감소한다.
유효크기는 성체가 임의교배방식을 버리고 근친교배로 돌아설 정도까지 작아질 수도 있다. 요컨대 연령,건강 그리고 개체의
교배형태 등이 한 개체군의 유전적 궤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생존 그 자체에까지 관여하는 것이다.
설혹 숲과 들이 어느 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들로 넘쳐난다고 해도 그 종은 멸종할 수 밖에 없다.
보호생물학자들과 유전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실험실과 동물원에서의 피상적인 연구로
둘러싸인 대강의 이론적 틀을 세웠다.
그들은 만일 근친교배에서 나온 적자(適者)의 억압과 결함유전자의 신속한 대치가 이미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면 그
개체군은 당장 위험에 처하게 됨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근친교배가 점진적이라면 개체군은 곤경을 헤쳐나갈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더욱이 자연선택이 개체군으로부터 결함유전자를 제거함으로써 세대를 거치면서 근친교배 억압효과는 완화될 수 있다.
대부분의 유해한 유전자들은 개체군에서 동형접합(2배수) 상태로 나타나므로 그들이 제거되면 전체 개체군에서의 발생빈도는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결함유전자로 인해서 개체군이 입은 상처가 종의 사망에서 유력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개체군의 크기와 그것이 분화하여 지역 전체에 퍼져나가는 방식이다.
"종의 유효크기를 500 이상으로 올려라. 그러면 안전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만일 그 종이 감소하여
한 곳의 은신처에 한 개체군만이 남았다면, 설령 5,000 개체가 넘는다고 할지라도 단 한 번의 화재로 멸종될 수 있다.
그 개체군은 한 종류의 질병으로 모조리 희생될 수도 있다. 그 지역에 살인적인 한파가 몰아닥치거나 먹이로 하던 종들이
멸종해버릴 수도 있으며, 꽃가루받이를 해주던 주요한 종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인구통계학적 재해" - 환경변화에 따른 개체군 크기의 불규칙적이고 급격한 감소 - 이며 대단히 치명적이다.
작은 크기로 근근이 존속해나가는 종에게는 스킬라라는 인구통계학적 재해가 카리브디스라는 근친교배 억압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시실리 섬과 이탈리아 본토 사이의 메시나 해협에 스킬라 바위가 있고
그 앞쪽에 유명한 소용돌이 카리브디스가 있다. 해협을 지나는 배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피하려고 바위에 접근하면
그곳에 사는, 개처럼 짖으며 머리가 6개인 괴물의 먹이가 되었다고 한다/역주).
한 지역에서 아슬아슬한 하나의 개체군으로만 존재하는 희귀한 종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날지 못하는 큰 딱정벌레인
거저리(Polposipus herculeans)인데, 이것은 인도양 서부 세이셸 제도의 작은 프리깃 섬의 죽은 나무에 한정되어 있다.
또 카우아이 섬의 메마른 암석 절벽에서 자라는, 정확히 10그루의 높이 6미터 나무인 하우 쿠아히위(Hibisca- delphus distans)
종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예로, 원래의 자연 서식처를 잃고 뉴멕시코의 한 방치된 목욕탕에서 살아가는 수생갑각류의
한 종인 소코로 쥐며느리(Thermosphaeroma thermophilum)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들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때로 구성 개체군들이 서로 너무 떨어져 있어서 개체군들 사이의 교류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종은 개체군의 개체군, 즉 초개체군을 이루고 그 속에서 생물들은 빈번히 이주한다.
기나긴 시간의 연장선상으로 볼 때 초개체군으로서의 종은 캄캄한 암흑 속에서 깜빡이는 무수한 등불로 생각될 수 있다.
각각의 등불은 살아있는 개체군이며 등불의 위치는 그 종의 서식지를 나타낸다.
종이 그 장소에 있으면 불은 켜지고 없으면 꺼진다. 무수한 세대를 거치면서 그 장소를 조사해보면 지역적인 멸종이
일어나는 동안 불은 꺼지고 같은 장소에 개척자 개체들이 서식하게 되면 불이 다시 들어온다.
만일 한 세대를 거치면서 꺼져가는 등불수를 능가하는 많은 수의 등불이 켜진다면 종은 무한정으로 존속할 수 있다.
등불이 켜지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꺼져가면 그 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으로부터 잊혀진다.
종의 존속에서 초개체군의 개념은 우리에게 희망과 절망 두 가지 모두를 안겨다 준다. 지역적으로 종이 절멸한 경우라도
비워진 서식처가 그대로 보존된다면 대개 그들은 빠르게 회복된다.
그러나 만일 이용 가능한 서식처들이 상당수 줄어든다면 전체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 원래의 서식처가 얼마간 남아 있더라도
모든 등불은 꺼지게 된다.
철저하게 보호되는 일부 보호구역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은 것이다. 빈 지역을 채울 수 있는 개체군의 수가 너무 작으면
멸종에 이르기 전에 군집을 다시 이룰 수가 없다. 따라서 그 계는 점차 통제 불가능한 지경으로 곤두박질쳐 모든 등불이
꺼지게 되고 칠흑의 어둠만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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